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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지민/슈짐/슙민] 창문 밖 네온사인

  • firstcrushonyou
  • 2015년 8월 18일
  • 4분 분량

사람들은 익숙함에 빠져 중요한 무언가를 못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익숙함과 지루함 속에서 ‘무언가’를 찾는 순간, 그것은 결코 무언가가 아닌 특별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눈치 채지 못 하였던, 스쳐가던 그것이 스며드는 순간 그것은 사람에게 물들어버린다.

[슈가지민/슈짐/슙민] 창문 밖 네온사인

지민은 왼쪽 주머니를 뒤적이며 지하철에 올라탔다. 갑자기 출발하는 지하철에 몸이 덜컹, 흔들린 지민은 급하게 한 쪽 손으로 손잡이를 붙잡았다. 왼쪽 주머니에서 흰 색 이어폰을 꺼낸 지민은 꼬여있는 줄을 풀며 지하철 안을 한 번 스윽- 훑어봤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다양하였다. 빨간색 워커, 흰 색 구두, 카키색 운동화 ... 하지만 그에 반해 다들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휴대폰 속 불빛에만 열중하는 고개를 숙인 모습. 그 모습을 보며 지민은 마치 자판기 속 음료수 캔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모두 다른 색, 다른 디자인을 가지지만 결국은 몇 백 원의 값으로 자판기 밖을 나가는. 그 음료수 캔들. 지민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창 밖으로 보이는 모텔가의 네온사인은 언제 보아도 아름다웠다. 지민은 한강의 야경보다 오히려 저 모텔가의 다양한 색을 가진 네온사인이 만드는 풍경이 더 황홀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부산에서 올라온 지민이 처음으로 2호선을 탔던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서울에 살던 삼촌을 보러 갔고 그 길에 2호선을 처음으로 탔다. 고등학교 2학년, 어린 지민이 처음으로 보았던 지하철 창문 밖 네온사인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지민은 그 날 목표가 생겼다. 저녁마다 노을빛을 받으며 빛나는 네온사인을 보기 위해 서울에 있는 대학을 꼭 가겠다고. 넋을 놓고 밖을 보다보니 어느새 내릴 역에 도착하였다. 지민이 내리기 위해 분주하게 이어폰을 정리하는데, 문 쪽에서 낯선 무언가가 보였다. 아니, 사실 매우 익숙한 모습이었다. 다만 지하철 안에서 보기에는 어색하였다. 키가 크지는 않지만 작지 않은 체구, 새하얀 얼굴. 지민의 교양 과목 교수, 민윤기였다.

언젠가 지민은 동기에게 민윤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그는 교수치고는 매우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경력이 꽤나 쌓인 교수들만큼 –어쩌면 그 보다 더- 카리스마가 있었고 학생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남 학우들은 그를 동경하였고, 여 학우들은 그를 따라다녔다. 지민과 딱히 말을 섞은 적 없는 동기 하나가 지민에게 말을 걸었다. 이름이 김태형이었나.

“ 지민아, 안녕. 너 민윤기 교수 얘기 들었어? ”

“ 아니. ”

별로 안 궁금하였다.

“ 어제 서희가 봤는데, 그 교수 외제차 끌고 다니나봐. ”

당연하였다. 그 교수에게 지하철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교수를 지하철에서 본 것은 낯설었다. 안 그래도 내가 교수를 본 시간대는 한참 퇴근 시간과 겹쳐서 매우 혼잡하였다. 그 날 이후로 지민은 네온사인을 보기 전에 자연스레 민윤기를 찾았다. 윤기는 항상 있었다. 지민은 깨달았다. 자신이 네온사인에 집중하느라 몰랐던 것이지, 민윤기는 항상 같은 지하철을 탄다는 사실을.

왜 교수님은 무려 외제차를 두고서 이 복잡한 지하철을 타는 것일까.

지민의 눈에 민윤기가 박혀버렸다.

강의가 끝났다. 학생들은 책을 챙겨 모두 삼삼오오 모여 강의실을 나섰다. 태형이 지민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며 함께 저녁을 먹자 제안하였으나, 지민은 그를 거절하였다. 그리고 지민은 멍하니 윤기를 바라보았다. 그에게서 지하철 밖 네온사인이 보였다. 책을 정리하는 그의 손을 보다 시선을 위로 옮겼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지민은 느꼈다. 어느 순간 자신이 윤기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지민은 결국 질문을 던져버렸다.

“ 교수님은... ”

윤기가 지민을 쳐다봤다.

“ 남자와 남자가 만나는 것,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지민은 공을 날렸다. 그것도 직구로.

윤기는 아무 말 없이 지민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 눈 속에 빨려 들어갈 것 같지만, 지민은 먼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서로를 가만히 쳐다봤다. 책을 천천히 내려놓은 윤기는 지민에게 성큼 다가갔다. 그러고서 살짝 미소를 짓고서 말하였다.

“ 내가 왜 외제차를 두고서, 그 혼잡한 지하철을 탔는지 생각해봐요. ”

결국 지민이 먼저 윤기에게 입을 맞추었다. 정확히는, 눈을 꾹 감고서 입술을 갖다 댔다. 지민에게 첫 키스였다. 윤기가 손을 들어 지민의 양쪽 볼을 부드럽게 감싸며 고개를 틀었다. 가볍게 닿았던 입술이 열리고 서로의 혀가 얽혔다. 빈 강의실에는 끈적한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윤기는 지민에게서 입을 떼고 밑으로 내려갔다. 지민의 목에 짧은 버드 키스를 몇 번 하더니, 입술에 하듯 키스를 하였다. 윤기의 손이 급하게 지민의 니트를 벗겼다. 그리고 지민은 급하게 윤기의 손을 잡았다. 지민은 어느새 눈물을 달고 있었다. 윤기는 허- 하고 마른 웃음을 지었다. 윤기는 지민의 옷을 여미고서, 지민의 손을 잡고 강의실 밖으로 나섰다.

항상 혼자 타던 지하철을 윤기와 함께 타니 지민은 괜히 낯선 느낌을 받았다. 자리가 없어 둘은 나란히 섰다. 창문 밖으로 모텔가가 보였다. 지민은 윤기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모텔가 네온사인의 황홀함과 아름다움을. 윤기는 묵묵히 들어주었다. 곧 어느 역에 도착하였고 앉아있던 커플 한 쌍이 일어나며 딱 윤기와 지민, 둘이 앉을 자리가 생겼다. 지민은 윤기의 소매를 잡으며 저기에 앉자고 하였으나 윤기가 먼저 지민의 손을 붙잡고서 내리자고 하였다.

“ 교수님, 아직 저 내릴 역 아닌데요. ”

“ 모텔가 네온사인이 아름답다며. 그 모텔 안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같이 확인해보자. ”

윤기는 지민을 보며 미소를 지었고, 지민은 망설이다가 맞잡은 윤기의 손을 꼭 잡았다.

윤기에게 교수 생활은 지루하였다.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 하고 남들이 대학에 갈 동안 윤기는 유학을 가 젊은 나이에 명문대의 교수 자리를 꿰찼다. 그의 외모와 강의 실력에 그를 따라 다니는 학생들은 많았고 그에게는 그것이 익숙하였다. 주변을 한 번 볼 여유 없이 피곤하던 그의 삶에 어느 날 낯선 무언가가 걸렸다. 강의를 하던 윤기는 무심코 앞을 한 번 보았다. 분명 맨 뒷 줄에 앉았는데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형체가 있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윤기는 강의를 할 때 그 학생을 찾아 그를 보며 하였다. 작은 체구, 하얗고 동글한 얼굴.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무언가에 빠져 있는 모습이 윤기에게는 새로웠다. 주변 학우들이 말을 걸면 웃어주는 모습이 누구보다도 친절하고, 애교스러워 보였지만 지민은 절대 그들에게 동요하지않았다. 강의 시작 전에는 항상 이어폰을 꽂고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어느 날은 윤기가 차를 타려고 가던 중, 운이 좋게 지민을 마주쳤다. 지민은 윤기와 눈을 마주쳤지만 인사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윤기는 차를 놔두고서 그런 지민의 뒤를 따라가 같은 지하철을 탔다. 익숙함 속에 빠져 보이지 않던 지민이 보이기 시작하며, 지민은 윤기의 일상에 자신도 모르게 스며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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